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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원형, 회화의 원형


김성남이 그린 말라죽은 고목과, 물기를 머금은 숲, 사람이 버리고 떠난 폐가의 앞마당에 저 홀로 피어 있는 꽃나무 등의 일련의 그림들은 흔하지도 그렇다고 생경하지도 않은 자연풍경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 풍경은 한적하고 고즈넉하며, 쓸쓸한 정감마저 자아낸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인상에 지나지 않는다. 친근하기 조차한 이 소재들은 작가의 그림에 다가가기 위한 관문이며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 그 표면을 지나 그림 속으로 발을 들이미는 순간, 불현듯 숲은 우리로부터 고립되고 단절된 채 생경한 알몸을 드러내 보인다.

외관상 알아 볼 수 있는 몇몇 소재들을 제외하면, 그림 속의 숲은 온통 낯설기만 하다. 어둑한 숲 속 한쪽이 불붙어서 연기를 피워 올리는가 하면, 숲과 물웅덩이가 접해 있는 경계에는 바위인지 동물의 사체인지 모를 애매한 형상이 가로 누워있다. 숲 속 물웅덩이에서 한 사람이 헤엄쳐 지나가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물가에서는 꼬리에 피가 묻은 소의 뒷다리가 보인다. 물가에서 물을 먹거나 먼 곳을 응시하는 동물은 염소 같기도 하고 산양 같기도 하다. 아마도 이는 육안으로 알아 볼 수 있는 구체적 실체로서의 동물이기보다는 어떤 영적인 존재를 환기시키기 위해 그 곳에 그렇게 서 있는 듯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나무의 표면은 온갖 스크래치로 딱딱하게 굳어 있고, 그 상처로부터 나무가 내뱉는 신음소리가 들린다. 그 표면이 패인 채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나무는 마치 자기 속으로부터 한줄기 가녀린 빛을 발산하고 있는 것 같다. 숲 사이로 설핏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새 한 마리는 추락하는 중인지 아니면 비상하는 중인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숲은 온갖 살아있는 것들이 내지르는 소리와, 그 속에서 희미하거나 밝은 빛을 내뿜는 그로테스크하기 조차한 실체로서 육박해온다.

비록 그림 속에서 염소나 새 등의 특정의 동물 형상을 떠올려보기는 하지만, 이는 그저 흰 얼룩이나 비정형의 붓 자국과 다를 바 없으며, 형상도 그 의미도 분명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렇듯 그 실체를 분명하게 정의하는 대신에 애매한 채로 내버려 둔 것일까. 작가는 숲으로 나타난 자연을 선입견과 편견의 눈으로 보지 말기를, 맨눈으로 보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으로 재단되기 이전의 자연, 선험적인 자연, 원형으로서의 자연 그 자체를 보기를 요구한다. 지식의 꺼풀을 걷어내고 난 연후에 친숙해 보이던 숲은 온통 낯설기만 하다. 그 실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의미마저도 길을 잃고 만다. 대신, 숲은 역사 이전의 원시적인 자연, 아직 자연으로 불려지기 이전의 자연, 미처 의미화되기 이전의 자연의 육질을 드러낸다. 이는 낯선 것이 친숙한 것 안에 내재돼 있다고 보는 캐니와 언캐니의 중의적 관계에 대한 인식과, 일종의 이면 읽기와 행간 읽기에로 유도하는 한 전략으로서의 낯설게 하기에 그 맥이 닿아 있다.

김성남의 그림 속에서 숲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그것이 다름 아닌 자연 자체로서 육박해오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는 정의되지 않은 채로 반쯤은 방기된 듯한 형상과 의미들이 발하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감지된다. 자연이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라는 사실이 실감된다. 범신론과 물활론,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에 맞닿아 있는 이 실감은 자연이 아직 경외감과 두려움의 대상으로서 인간을 떨게 했던 시절로, 인간에게 희생제물을 요구했던 시절로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염소와 새와 소 등의 동물이나, 그 동물들의 몸에 묻어 있는 피, 그리고 죽어 있는 동물의 사체는 다름 아닌 자연에 바쳐진 제물로서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지식으로 오염된 자연은 피를 통해서만 정화되고, 그 원형을 회복할 수 있다. 그 숲에서 이뤄지는 살해와 폭력은 성스러운 힘에 연동된 것이며, 자연이 자기정화를 위해 요구하는 한 과정인 것이다. 한편, 인간의 도덕률을 떠나있는 그것(살해와 폭력 욕구)은 이성적 인간과는 비교되는 자연적 인간을 암시해준다. 즉 인간이 자신의 자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도덕률 저편에 있는 살해와 폭력 욕구를 불러내야 한다. 진아(眞我)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살해하고, 자신이 흘린 피로써 자신의 몸을 세척해야 한다. 모든 종교적인 장치들, 즉 정화의식과 통과의례 그리고 세례는 이처럼 자신의 죽임을 요구해온다.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피를 흘리거나 피를 요구하는 숲은 그 속에 문명화 이전의 자연인간을 잉태하고 있다. 진아가 실현의 대상이란 점에서 미래형으로 기술되듯, 자연인간 역시 미래형으로 기술된다. 그리고 그 자연인간은 작가의 전작에 나타난 초인(超人)과도 통한다. 아마도 한적한 숲의 물웅덩이 속에서 저 홀로 헤엄치는(물로 자기의 몸을 세척하는) 사람은 이러한 신성한 숲의 순례자, 즉 초인의 또 다른 형태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김성남의 그림에는 대지 깊숙이 뿌리내린 나무들과, 대기 속으로 연기를 피워 올리는 불, 그리고 숲에 면해 있는 물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이는 작가의 그림으로 하여금 흙, 물, 불, 공기로 나타난 세계의 4 원소설에 접맥되게 한다. 그러니까 이것들이 피와 살로 나타난 자연의 육질을 생성시키는 원형물질인 것이다. 이를 통해서 작가는 세계가 신성한 물질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유물론적 생성신화를 제안한다(이는 세계가 순수이념 즉 로고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창세신화와는 구별된다). 흙과 물이 반응하여 나무를 낳고, 물과 불이 혼음하여 하늘을 낳고, 불과 공기가 화합하여 이 모든 물질적 존재에다 필요한 생기를 불어넣는 화학적 세계, 연금술적 세계(둘 이상의 근원물질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른 물질을 낳는다고 보는), 생기론의 세계(모든 존재는 고유의 생명현상을 내장하고 있고, 이는 인간의 논리로는 붙잡을 수 없다는)인식이 그 밑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원형은 불가해한 대상으로서 다가오고, 작가는 그 대상에다가 형상의 옷을 입힌다. 그리고 그 형상이 애매한 채로 나타나는 것은 작가가 의미화의 안쪽으로는 불러들일 수 없는 자연의 원형, 생명, 아우라, 에너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남의 그림은 설핏 보면 흑백의 수묵화나 목탄화를 연상시킨다. 비록 육안으로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을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그 대상을 최소한으로만 암시한 드로잉이나 스케치 그림을 떠올리게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는 작가가 구체적인 실체를 부여하여 자연을 한정하기보다는 보여지는 자연의 이면에 놓여진 보이지 않는 자연, 자연의 사이와 틈과 주름들을 극대화하려는 한 장치일 것이다. 실제로도 작가의 그림은 붓질과 나이프로서 칠하고 긁어내기를 십수 차례 반복한 지난한 과정의 산물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그 표면에 무수한 비정형의 스크래치를 만들어내고, 그 스크래치가 화면에다 단단한 물질감을 부여한다. 이처럼 성글게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단단하게 느껴지는 인상은 회화 자체의 물질성에 대한 형식실험의 한 형태로 보인다. 그러니까 작가는 자연의 원형과 함께, 회화의 원형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연을 상실했는지도 모른다. 잡지와 엽서, TV와 영화 등의 각종 매체의 눈을 통한 자연에 길들여져 있으며, 이미지로서의 자연을 실제의 자연보다 더 친숙하게 느낀다. 이 매체들에 등장하는 자연은 인간을 위협하지도 않으며, 심지어는 아름답기조차 하다. 이는 그 이미지가 자연 자체보다는 인간의 욕망을 투사한 대리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해 그 이미지 속에는 자연이 들어 있지 않다고까지 말 할 수 있다.
김성남이 그린 숲 그림은 이처럼 고도로 인공화된 자연, 매체를 통해서 걸러진 자연의 이미지에다가 원시적이고 거칠기조차 한 자연을 대질시킨다. 이와 함께 자연이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자명한 사실을 정작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을 주지시킨다. 그리고 지식으로 재단되기 이전의 자연, 자연의 원형과 대면케 한다.

고충환 / 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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